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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56호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송광사

지정일 : 1962.12.20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뜨자, 1197년(명종 27)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 때까지는 송광산이라고 했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내부천장

외부공포

경내에는 이들 16 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을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후 승려 취봉(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廣遠庵)·천자암(天子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불일암(佛日庵)·판와암(板瓦庵)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 및 탑전(塔殿:寂光殿) 등이 있고, 56개의 말사와 수련원·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다.

또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보물 90),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보물 207), 하사당(下舍堂:보물 263), 약사전(藥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흥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송광사 국사전은 송광사의 3조사(三祖師)의 화상(畵像)을 모시기 위하여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창건하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한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어 경내 하사당(下祠堂)과 함께 같은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의 특색은 정면을 4칸으로 한 것과 양 측면에 측고주(側高柱)를 세워 전면쪽을 퇴칸(退間)처럼 가구한 점이다. 공포(공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으로 짜임새는 단순하나 세부수법에 장식적인 요소가 짙게 나타나 있다. 공포는 헛첨차(虛첨遮)로부터 전개되고 행공첨차(行工첨遮)와 통장혀(通長舌)가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게 하였으며, 내부에서는 헛첨차와 살미(山彌)가 보아지가 되어 힘있게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현재 대들보 윗면에 우물천장을 전면 가설하였으나 그 위의 가구부재(架構部材)가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초에는 연등천장이었던 것 같다. 대들보 위의 가구는 동자주(童子柱)가 종보를 받게 하였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현지교통 : 1)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송광사행 직행버스 이용/ 하루 9회 운행/1시간 30분소요

           2) 순천시내에서 송광사행 좌석버스 이용/ 16회 운행/ 1시간 10분 소요

           3) 순천공용정류장→송광사 시외버스/ 2회 운행

           4) 곡 천→송광사 택시 이용 / 10분 소요(5,000원)

도로안내 : 광주→호남고속도로→송광사나들목(주암)우회전→보성방면 27번 국도→주암호반도로→송광사

현지숙박 : (관광호텔) 순천로얄관광호텔  061-741-7000, 시티관광호텔  061-753-4000

           (유스호스텔) 순천시유스호스텔  061-755-5522

           (여관) 조계산장 061-755-2150, 금광장 061-755-2066, 송광장 061-755-2125

           (민박) 외송마을 , 순천시 홈페이지 관광순천 숙박안내 참조

정보제공 : 1) 전남 순천시청 문화관광과 문화관광담당(전화 061-749-3328 / 팩스 749-3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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