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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시 개관 동쪽은 광양시, 서쪽은 보성군, 화순군, 남쪽은 순천만을 끼고 보성군과 여수시에, 북쪽은 곡성군에 접한다. 전체 면적의 약 70%가 산지이며, 전라남도에서 산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군의 북부에서 서남부로 문유산(文遊山:688m)·유치산(酉峙山:532m)·오성산(五聖山:608m)·조계산(曹溪山:884m)·고동산(709m)·백이산(伯夷山:584m) 등의 소백산맥의 지맥이 있고, 이 산줄기는 북류(北流)하는 보성강(寶城江) 수계, 섬진강(蟾津江) 수계와 남류(南流)하는 동천(東川)·이사천(伊沙川)의 분수령을 이룬다. 보성강은 송광면에 흘러 주암면 대광리에서 주암다목적댐을 만들고 섬진강과 합류한다. 상사면(上沙面)에는 상사조정지댐이 있다. 보성강의 주암호와 이사천의 승평호는 이러한 다목적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이다. 동쪽을 관류하는 동천은 중간에서 석현천(石峴川)과 옥천(沃川)을 합류하고 남류하면서 순천평야를 형성하며 순천만으로 유입한다. 남부에는 비교적 넓은 낙안분지(樂安盆地) 평야가 있다. 연평균기온은 13.9℃로 1월 평균기온 1.1℃, 8월 평균기온 27.1℃이고, 연강수량은 1,469mm이다. 남해안에 면하여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온난하다. • 송광사
순천 송광사는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으로 송광면 신평리에 있다. 우리나라의 오랜 불교 역사 속에서 전통승맥을 계승한 승보사찰(僧寶寺刹)로, 합천 해인사(法寶), 양산 통도사(佛寶)와 더불어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리고 있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다. 이렇게 창건된 뒤 1197년(명종 27)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 때까지는 송광산이라고 했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 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을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후 승려 취봉(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廣遠庵)·천자암(天子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불일암(佛日庵)·판와암(板瓦庵)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 및 탑전(塔殿:寂光殿) 등이 있고, 56개의 말사와 수련원·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다. 또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보물 90),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보물 207), 하사당(下舍堂:보물 263), 약사전(藥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흥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주에서 66㎞, 순천시가지에서 47㎞ 거리에 위치한 송광사는 홍교를 지나 일주문을 거쳐 우화각에 이르면 속세와 인연을 끊고 다리를 건너 불국정토로 향했을 선승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있어 웅장한 기상을 나타내며 각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 낙안읍성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東內里) ·서내리 ·남내리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 성곽 유적. 사적 제302호. 축조연대 미상. 둘레 1,384m, 높이 4m, 너비 3∼4m. 현재 성벽과 동 ·서 ·남 문지(門址), 옹성(壅城) 등이 남아 있다. 고려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 절제사(節制使) 김빈길(金?吉)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는 1424년 9월부터 토축의 읍성을 석축으로 쌓으면서 본래보다 넓혀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성 안에는 우물 2개 ·연못 2개가 있었으며, 해자(垓字)는 파지 않았고, 문의 보호시설인 옹성은 그 후에 설치하였다.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으로 긴 직사각형이며, 체성(體城)의 축조나 적대를 구비한 점에서 조선 전기의 양식이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옹성은 남 ·서문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성곽은 커다란 자연석으로 쌓고,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돌로 쐐기박음을 했지만 아직도 견고하다. 남문터는 마을 안 골목길에 있는데, 네모진 바위를 3단으로 쌓아올린 성문벽이 길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성 안에는 1536년(중종 31)에 지은 객사(客舍)가 온전히 남아 있고, 대성전(大成殿) 등 9채나 되는 향교가 보존되어 있다. 장군 임경업(林慶業)이 15세 때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낙안성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임경업 축조설은 믿을 수 없다. • 순천만
남북길이 약 30 km. 동서길이 약 22 km. 고흥군, 보성군, 순천시, 여수시 등과 접하며, 매우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만의 북부에 순천시가 있고 서북쪽에는 벌교읍이 있다. 낭도(狼島), 적금도(積金島), 둔마도(屯馬島), 조발도(早發島), 대소여자도(大小汝自島), 장도(獐島), 지주도(蜘珠島), 백일도(白日島) 등 수많은 섬이 산재한다. 연안에서는 제염업과 조기,멸치, 갈치, 장어, 문어, 전어 등의 어로가 성하며, 김, 고막, 굴의 양식업도 이루어진다. 갯벌은 하천으로부터 끊임없이 영양물질이 공급되며, 지구상 생물의 자그마치 20%가 서식하는, 생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계이다. 순천만의 갯벌은 보전가치가 뛰어나고 생산력이 왕성한 습지보호지역이다. 순천만 갯벌은 농게, 조개, 꼬막 등이 다량 서식하여 생산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연정화기능,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심미적기능 등이 뛰어나다. 습지는 크고 작은 온갖 생물들이 서식하여 ‘생명의 소용돌이'라고도 불린다. 순천만의 습지는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하류지역의 하천 주변과 갯벌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순천만의 습지는 뻘층이 깊고, 분해성 미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여 유기물 분해능력이 뛰어나, 철새들에게 일시에 많은 양의 먹이를 공급할 수 있다. 순천만에는 총 36과 92속 116종의 식물들이 염생습지와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순천만 입구에는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대 군락은 적조를 막는 정화 기능이 뛰어나 순천만의 천연 하수 종말 처리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홍수조절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또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고 안정감을 주어, 물고기들의 보금자리가 되며, 다시 이들을 먹이로 하는 수서 조류들이 찾아오게 된다. 순천만이 희귀 조류의 서식지가 된데에는 바로 갈대군락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인간과 자연이 만날 수 있도록 계획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탐방객들이 순천만의 생태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갈대밭 휴양림, 산책로, 공원 등을 통해 아름다운 순천만의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천만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환경부에서 주관한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에 따르면, 순천만 지역에서 관찰된 조류는 1999년에 19종 5,210 개체에서 2002년에는 34종 15,746개체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환경부 1999,2000,2001,2002) 순천만은 흑두루미, 매, 잿빛개구리매, 큰기러기, 큰고니, 말똥가리, 검은머리갈매기, 황조롱이, 민댕기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멸종위기 특정 야생동물 및 천연기념물에 속하는 조류가 정기적으로 도래해 온 지역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