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 숲

함양을 고향으로 두었거나 연고가 있어 잠시라도 머물렀다가 떠나온 사람들에게 잊지 못하는 것이 상림숲이다. 나 역시 십여년의 연고가 있어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같은 정으로 상림을 소개한다.

숲은 인생이란 먼 길을 걸어야 하는 나그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이다. 도시인들이 꿈꾸는 목가적인 그림속에는 숲속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산책하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 있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혹 지쳐 있다면 잠시 눈을 감고, 이른 아침 이슬이 햇살에 깨기전에 호젓이 단풍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원래 상림은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수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이다. 신라 진성여왕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때,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어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이 둑을 쌓아 강물의 흐름을 시가지의 외곽으로 바꾸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둑을 튼튼히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천년의 정을 간직한 숲이 조성되었다. 당시에는 이 숲을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숲을 조성하고 난뒤에는 홍수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 유구한 세월을 겪으면서 중간 부분은 훼손되어 지금은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으며, 하림구간은 마을이 형성되어서 몇 그루의 나무로 흔적만 남아 있다. 지금 숲에는 은행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백동백나무 ·비목나무 ·개암나무 ·물오리나무 ·서어나무 등 120여종 20,000그루의 낙엽, 활엽수가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총 면적이 약 21Ha이고 숲의 길이가 1.6Km에 달하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의 관리 임용고시인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수재였다. 885년 귀국할 때까지 17년동안 당나라에 머물러 있는 동안 고운(顧雲), 나은(羅隱) 등 당나라의 여러 문인들과 사귀어 문명을 날렸다. 귀국 후 당에 체류할 때 지은 표·장·격(檄)·서(書)·위곡(委曲)·거첩(擧牒)·제문(祭文)·소계장(疏啓狀)·잡서(雜書)·시 등 1만여 편을 정선하여 ≪계원필경 桂苑筆耕≫ 20권을 지었다. 이 중 특히 〈토황소격 討黃巢檄〉은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29세로 신라에 돌아오자, 헌강왕에 의해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郎知瑞書監事)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문명을 떨쳐 귀국한 다음해에 왕명으로 〈대숭복사비문 大崇福寺碑文〉 등의 명문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의 신라사회는 이미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방에서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중앙정부는 주(州)·군(郡)의 공부(貢賦)도 제대로 거두지 못해 국가의 창고가 비고, 재정이 궁핍한 실정이었다. 889년(진성여왕 3)에는 마침내 주·군의 공부를 독촉하자 농민들이 사방에서 봉기해 전국적인 내란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운 선생은 신라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40여 세 장년의 나이로 관직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였다. 당시의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의 사이에서 빚어지는 심각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즐겨 찾은 곳은 경주의 남산(南山), 강주(剛州 : 지금의 경상북도 義城)의 빙산(氷山), 합천(陜川)의 청량사(淸凉寺), 지리산의 쌍계사(雙磎寺), 합포현(合浦縣 : 지금의 昌原)의 별서(別墅) 등이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동래(東萊)의 해운대(海雲臺)를 비롯해 그의 발자취가 머물렀다고 전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글씨도 잘 썼다. 오늘날 남아 있는 것으로는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문〉이 유명하다. 그리고 전해오는 많은 설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선시대 김집(金集)의 ≪신독재전집 愼獨齋全集≫에 실린 〈최문헌전 崔文獻傳〉이 있다.

고운 선생의 발길이 이른 곳마다 그러하지만 상림에도 선생과 관련된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숲을 만들 때 금호미로 하룻만에 나무를 심었다는 전설,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등이 있으나 그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상림에는 뱀, 개미, 개구리 등의 미물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선생은 어머니로부터 상림에서 뱀을 만나 매우 놀랐다는 얘기를 듣고, 상림으로 달려가 '이후 모든 미물은 상림에 들지마라'고 외치니 그 후부터 상림에는 뱀, 개미등의 미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함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상림에는 뱀과 개미가 없다고 믿는다. 상림에서 뱀과 개미 등이 정말 없는지를 확인해 봄직하다. 아침 저녁 산책길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개미는 간혹 본적이 있으나 뱀은 본적이 없다.

울창한 이 숲에는 봄빛에 풋풋한 신록, 여름의 싱그러운 녹음, 가을 단풍의 화려한 변신겨울의 설경등 사철을 통하여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숲 위쪽에 저수지가 있어서 사시사철 숲 속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날씨가 가물 때에도 충분한 수분을 공급할 수 있어 언제나 녹음이 짙다.

이은리 석불(유형문화재 제 32호)와 함화루(유형문화재 제 258호) 및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문화재 자료 제 75호), 대원군이 척왜 양창을 주장하면서 세웠던 척화비(문화재자료 제 264호) 그리고 해마다 백일장이 열리는 사운정, 초선정등 정자와 만세기념비, 독립투사들의 기념비와 동상이 있어 이 숲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함양을 연고로 간직한 사람들에게 상림숲은 새들과 나무와 풀만 자라는 단순한 숲이 아니다. 숲속 오솔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던 추억과, 갈잎 위에 누워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 그리워하던 애틋함이 아직도 파랗게 가슴속에 살아 있는 숲이다.

2003.9.27

교통안내

1) 남해고속도로~서진주에서대전함양쪽고속도로~함양I.C~함양읍내~상림숲

2) 대전~대진고속도로~함양I.C~함양읍내~상림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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